안녕하세요, 님. 🕊️에디터 이산오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팔 골절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뼈를 철심으로 고정하고 석고 깁스를 하고 지냈는데, 깁스를 풀던 날 느꼈던 이상한 감정이 아직도 생각나요. 분명 내 신체의 일부지만 그 안은 볼 수 없으니 팔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던 상태에 답답했다가 눈으로 확인하니 후련했던 것 같아요. 수술복을 입은 의사를 그리고 작업을 위한 보철물을 세우는 지이호 작가님의 작업을 봤을 때 부려졌던 팔을 치료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어요.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작업물은 그 작가의 상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신체와의 유사점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레터에서는 몸을 가진 존재의 불안정성에 대해 작업을 전개하는 지이호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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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 에스키스, 2020, 바느질한 수술포 위에 수채, 바니시, 53 × 33.4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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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에디터) 안녕하세요. 지이호 작가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이호 작가) 안녕하세요. 몸을 상대로 느끼는 질투와 상상을 다양한 재료를 통해 표현하는 지이호입니다. 물리적인 몸을 가진 다른 존재들과 제가 ‘나란히 놓여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작품 또한 같은 맥락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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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의 일부, 2021, 바느질한 수술포 위에 수채, 알루미늄 프로파일, 203 × 120.3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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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제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건 아마도 의사의 초록색 수술복이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업을 보며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태어나는 장면이 문득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물어보았어요. 자신의 영아기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텐데요. 기억나지 않는 내 모습을 타인의 말에 의존해 상상해 보고, 잊지 않기 위해 일기 같은 기록을 해두는 것이 문득 묘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작가님이 SNS에 꾸준히 올리시는 작업 일지가 작가님의 몸과 가까이 붙어있는 어떤 것들의 집합 같아 인상적이었는데, 작업을 기록하시는 데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이호) 기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꿈쩍거리기’ 위해서였어요. 특히 번아웃을 길게 겪고 작업으로 복귀하려 했던 2019년 말에는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장치가 너무나도 필요했습니다. 근래에는 친구에게 “혹시 작업 SNS에 30일 넘게 게시물이 안 올라오면 경찰에 내 신변 확인을 요청해 줘.”라는 부탁을 했어요. 농담 1스푼과 진심 11스푼이 섞인 일종의 ‘생존 신고’ 기능 추가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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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자 3 (TJ)>의 일부, 2022, 수술용 실로 봉합된 회색천 위에 수채, 각목, 205 × 42 × 12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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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외과 의사〉의 뻥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의 환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런데 그것이 실제 통증이 아닌 메타인지적인 감각 같다고 할까요?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가님은 본인 자신과 주변인의 몸을 예민하게 감각하고 관찰하고 있다고 느껴지는데요. 이러한 태도가 언제부터 작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요? 🪽(지이호) 6살쯤부터 가족들이 병원에 입원해 큰 치료를 받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배려로 그들의 아픈 모습을 직접적으로 마주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걱정이 많았던 어린 저는 인터넷으로 그들의 병명을 검색하면서 무섭고 끔찍한 질병 이미지를 목격했고, 나아가 그 질병들이 가족력이 있어 나도 내 가족들처럼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충격이 지금의 예민한 감각을 만든 눈덩이였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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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2021, 드로잉, 오브제, 에스키스 등이 채워진 이동형 서류함에 한자 조각, 63 × 35.9 × 83.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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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황금 목발 에스키스 (다이달로스)〉의 일부, 2021, 안료 잉크 출력물, 밀랍, 실, 나무판, 철판, 철망, 44 × 55 × 2 cm
(오) 〈황금 목발 에스키스 (다이달로스)〉의 뒷모습 일부, 2021, 안료 잉크 출력물, 밀랍, 실, 나무판, 철판, 철망, 44 × 55 × 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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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고통 상태나 한계에 다다를 때 저는 날개를 가진 대상이 되어 그 상황을 벗어나는 상상을 하곤 해요.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황금 목발〉 연작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요. 해당 작품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지이호) 솔직히 고백하자면 〈황금 목발〉은 천사를 보면서 ‘재수 없어…!’라고 생각한 저의 질투심에서 시작했습니다. 제가 건강염려증을 가진 사람이다 보니 사람 몸에 예쁜 날개까지 달고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천사의 초월적인 건강함이 너무 부러웠달까요. 그때부터 날개를 가진 신화적 존재들의 몸을 굉장히 삐딱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들의 신체적 고충을 짐작해서 내 현실을 합리화하려는 얄궂은 마음인 것 같기도 해요. 어쩌면 그들의 날개는 아름답지만 그와 동시에 신체적 불안정함을 입증하는 장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황금으로 만들어진’과 ‘목발’을 합쳐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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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목발 에스키스 (천사)〉의 일부 , 2021,안료 잉크 출력물, 염료 잉크, 숄트레지, 조각한 아크릴판과 집게, 41 × 3.3 × 58.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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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아들을 위한 둥지〉의 일부, 2022, 경량 점토, 점토, 말린 꽃잎, 곤충 날개, 밀랍, 끈, 35.5 × 19 × 9.5 cm
(오) 아버지와 아들, 2022, 캔버스 출력물, 밀랍, 실, 바늘, (왼쪽부터) 11 × 35.5 × 2 cm, 29 × 6 × 1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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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스 콜〉의 일부, 2019, 아보카도 씨, 각 3 cm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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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작가님의 작업을 보면서 ‘치료’와 ‘치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고통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치료라면, 고통을 받아들여 미세하게 변화하는 생장 상태를 바라보는 것이 치유라고 생각돼요. 알고 있던 대상을 낯선 것으로 해방하는 행위 자체가 작가님에게 치유의 과정이 되고 있다고 느꼈어요. 〈너스 콜(Nurse Call)〉에서 그러한 면이 많이 느껴졌고, 밀랍, 버섯 같은 자연물을 작업의 재료로 쓰는 이유도 그러한 맥락에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너스 콜〉에 대한 설명과 현재 작업에 사용하시는 다양한 매체에 대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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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호) 〈너스 콜〉은 무기력증으로 힘들 때 먹고 남은 아보카도의 씨앗에서 칼이 스친 부분이 주황빛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걸 발견함으로써 시작되었어요.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베인 상처 같아 보여서 놀랐던 것 같아요. 그렇게 씨앗을 주워 와서 조각칼로 이리저리 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던 흔적을 후에 〈너스 콜〉이라는 작품으로 공개했습니다. 다들 갈색으로 딱딱하게 마른 결과만 보시면 아보카도 씨앗인지 잘 몰라보세요. 저도 이런 물질로부터의 ‘낯섦’이 마음에 들어서 비미술 재료도 함께 실험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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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자 3 에스키스〉의 뒷모습 일부, 2021, 알루미늄 왁구, 캔버스 천, 한지, 수채 물감, 바니시, 손바느질 한 실, 밀랍, 알루미늄 프로파일, 63 × 5 × 37.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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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작업이란 현재 진행형으로 무언가를 계속 만들다가도 그것을 멈추는 완성 지점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죠. 보철물을 만들고 살을 붙이고 찢어진 부분을 꿰매는 작업의 과정을 고려했을 때, 어쩌면 작가님에게는 완성의 순간이 생장이 멈추는 지점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가님만의 작업 완성 상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이호) 저는 작품이 어떤 상태로 고정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작품의 물리적 상태는 인간의 시간 단위에서 잘 감각되지 않을 뿐 매 순간 환경에 반응하며 대체로 붕괴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이런 관점 때문에 제 작품들을 상대로 보철물을 추가하거나 나름의 보존 또는 증강 처리를 해주는데 더욱 거리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완성 상태의 작품을 보여드릴 수 없는 무책임한 작가인 것 같기도 해요. 다만 가능한 선에서 작품의 변화 과정을 기록해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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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의 일부, 2024, 종이접기 위에 드로잉, 15 × 11 × 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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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무슨 일을 꿈지럭 중인지는 인스타그램 계정(@ji_iiiiiiho)에 쫌쫌따리 고해바치는 중입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얼굴 사진이 없는 SNS 계정이지만 글로나마 제 모습을 묘사해 보자면 기다란 체격에 매우 긴 머리털을 땋고서 챙이 넓은 모자를 자주 쓰고 다닙니다. 하지만 작업실 방문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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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호🪽
몸에 관한 질투와 상상을 연금술적인 태도로 소환한다.
주요 단체전
2024 바디 프로필, 팩션, 서울
2023 공백의 울타리들, 그어떤 갤러리, 청주
2023 High Poly, 아줄레주 갤러리,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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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가진 존재는 언젠가 병이 들고 소멸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죠. 지이호 작가님에게 작업이 생존신고를 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처럼 님을 건강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산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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