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에디터 이강선입니다. 여러분은 올여름 어떻게 보내실 예정인가요? 지구온난화로 인해 매해 여름이 더 무더워지고 있는데요. 불과 몇 년 전 이맘때는 이런 더위에도 마스크를 껴야 했던 게 생각납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 전체가 흔들렸던 게 조금은 먼일처럼 느껴지지만 역병이 지나간 지금까지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언젠가 다시 이런 대재앙이 찾아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주현 님의 〈무착륙비행〉이 저에게는 크게 와닿았어요. ‘무착륙 비행’은 코로나 시대에 성행한, 이륙을 하고 타국으로 착륙하지 않고 돌아오는 비행이에요. 잠시 하늘에 떠 있다가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면서 면세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목적으로의 수요가 꽤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사회의 현상을 파고들어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규칙을 드러내는 🛬조주현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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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도 어둡지도 않은》(2020, 위켄드)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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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선) 안녕하세요, 조주현 작가님! 간단한 작업 설명 부탁드립니다
🛬(조주현) 안녕하세요! 조주현입니다. 저는 실재 속에서 보이지 않는 규칙 조건을 탐구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콜라이더가 설정되지 않은 땅’과 같은 결과물에 주목하며 근원과 과정이 무엇인지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콜라이더’는 3D 프로그램에서 물리 충돌 처리를 위한 항목이에요. 이 항목이 설정되지 않은 땅은 겉으로 보기에는 실제의 땅과 같아도 물리적으로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 속 캐릭터가 그 땅 위를 밟는 순간 아래로 추락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회 구조에서도 매끄럽게 마감하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 주목해요. 최근에는 동시대 기술 환경 내에서 몸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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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착륙비행,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9분 15초, 비디오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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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현 님의 〈무착륙비행〉을 보면서 지난 겨울 제가 처음으로 어딘가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업 리서치를 하려고 공항에 자주 갔던 게 떠올랐습니다. 여행객이 아닌 시선으로 본 공항은 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공간이었어요. 이 작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 〈무착륙비행〉은 전시 《How Far, How Close》(2023, Aranya Art Center, 중국)의 커미션 작업입니다. 팬데믹 기간에 특별 운영된 관광 비행인 ‘무착륙 비행’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어요. 국경이라는 현실적 경계를 재인식한 공동의 경험에서 출발했고, 불교의 groundlessness(기반 없음)** 개념을 경유하여 그 시기의 다양한 사회 상황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무착륙비행〉에서 암시하고 있는 정지되거나 묶여 있지 않는 감각을 통해 현세대의 초현실적이고 불확실한 시대상을 이야기하려 했어요.
**이하 영문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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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Far, How Close》(2023, Aranya Art Center)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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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사람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늘 더 단단한 기반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groundlessness**는 그러한 생각과 반대되는 개념이라 흥미로웠어요. 혹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이 개념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불교 철학에서 왔어요. 삶에는 단단한 땅, 즉 고정된 정체성도 고정된 실체도 없다는 뜻이에요. 저는 종교가 없지만 힘든 순간에 이 개념을 떠올리곤 해요. 힘든 상황도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기반이 없는 불안정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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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도 어둡지도 않은》(2020, 위켄드)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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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oundlessness’ 속 바닥이라는 단어는 2019년부터 탐구해 온 키워드에요. 작업마다 의미가 변하고 있어요. 이전 개인전 《검지도 어둡지도 않은》에서는 프로그램 안에서 출구가 없는 특성과 연결 지어 가상 공간인 ‘흑공(黑空)’을 만들어 작업을 진행했어요. ‘흑공’은 게임 인터페이스에 나타나는 오류의 공간과 블랙홀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참조하여 상상한 가상공간이에요. 죽음이 설정되지 않은 게임 속 캐릭터와 블랙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자본주의 사회 속의 현대인에서 유사점을 찾았어요. 이 전시에서의 ‘바닥 없음’은 무착륙 비행의 ‘기반 없음’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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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도 어둡지도 않은》(2020, 위켄드)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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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가 끝난 지금 무착륙 비행은 코로나 시대의 독특한 관광 비행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요. 당시 방역 정책이 실행되고 있었던 만큼 작업을 진행하시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혹시 작업을 진행하며 겪은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 한국에서 무착륙 관광 비행은 항공법상 국제선에 속하기 때문에 여권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촬영 당시 출발과 도착 모두 인천공항이었기 때문에 이 항공 일정을 국내선이라고 착각해서 긴급 여권을 발급해야 했던 작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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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착륙비행,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9분 15초, 비디오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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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주현 님의 기존 작업이 현재 사회에 기반하여 다양한 경계에 관해 이야기하셨다고 생각해요. 공항과 비행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 일상과 여행 사이의 경계 등 여러 가지 경계에 대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이번 작업에서 경계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이전 개인전에서는 게임의 탈출할 수 없는 공간,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경계,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과 같은 추상적인 경계를 이야기했었다면, 이번 작업은 국경과 같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경계를 재인식한 공동의 경험에서 출발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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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Far, How Close》(2023, Aranya Art Center)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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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착륙 국제관광 비행의 ‘국경’ 뿐만 아니라 집과 바깥, 특히 감염 예방 행동 지침인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실시한 면적당 인원 제한, 사적 모임에서의 인원 제한으로 느낀 동거 가족과 타인의 경계까지 팬데믹을 겪으며 다양한 경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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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착륙비행〉은 중국에서 진행된 전시로 알고 있어요. 타국에서 하는 전시는 어떠셨을까요?
🛬 가보지 않은 곳을 스케치업으로 보며 계획하는 것이 어려운데 심지어 아란야 아트센터의 구조가 특이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영상이 상영되는 방식과 설치가 잘 이어지도록 고민했습니다. 물리적인 부분 외에 예상치 못했던 건 중국의 검열이었어요. 탑승일 당시의 국제 뉴스, 신문의 헤드라인이 담긴 장면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외신 보도를 민감하게 검열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수정하여 중국 전시용 버전을 따로 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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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 black, 2020, 2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56초, 비디오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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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마지막 질문인데요. 루더우레터 독자님께 주현 님이 소개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가 있을까요?
🛬 〈무착륙비행〉을 작업하며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이탈로 칼비노의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와 브루노 라투르의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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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서치 단계에서 하이퍼텍스트를 소재로 한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를 읽었는데요. 저는 하이퍼링크***를 하나의 방법론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재밌었어요. 여러 수식 관계 레이어를 연결하며 작업을 이어 나가고, 그 안에서 서로서로 레이어끼리 다시 연결되는 연결고리를 찾는 거죠.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는 현세대의 과잉 연결된 감각과 과잉 존재(homo hyper)를 암시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착륙'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은 팬데믹을 정책 전환의 계기임과 동시에 세상과 행성을 보는 근본적인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대지(earth)로서의 지구(the Earth)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어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참조(하이퍼링크)를 통해 독자가 한 문서에서 다른 문서로 즉시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 '하이퍼링크'는 이러한 하이퍼텍스트 문서 안에서 특정 형식의 자료를 연결할 수 있는 참조 링크/고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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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더우레터를 통해 중국에서 전시한 작업을 다시 소개할 수 있어 기뻐요. 틈새로 요즘 열심히 하고 있는 수영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물에 떠다니는 느낌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수영할 때만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 즐겁게 하고 있어요. 수영은 잘하고 싶어 몸에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잘 안되더라구요. 불필요한 생각과 힘을 버리고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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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현🛬
실재의 구조 속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규칙 조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비가시화된 규칙 조건을 드러나게 하는 대상을 탐구한다.
개인전
2020 검지도 어둡지도 않은, 위켄드, 서울
2022 팀에 합류하여 카드를 받으세요 (컵케이크와치와와), 인미공, 서울
주요 단체전
2023 How Far, How Close, Aranya artcenter, 중국
2022 옴: 최후의 만찬, 유영공간, 서울
2019 Anti–Freeze, 합정지구, 온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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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님의 작업을 통해 알게 된 'groundlessness'이라는 개념을 통해 묘한 해방감을 느꼈어요.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혹여나 님을 둘러싸고 있는 힘듦이 있다면,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으니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지금의 더위도 무사히 지나갔으면 하네요🥵
🌞 이강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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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루더우레터
김의선, 안진선, 이강선, 이산오, 전영주, 최지원
루이즈더우먼
💰후원 계좌 카카오뱅크 3333-27-2485869 안진선(루더우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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